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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다크

01_ 2010 – 2012, 세 번의 여름

“라다크에서 언제까지 여행만 할 셈이야? 놀러 오는 건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아?”
“무슨 뜻이야?”
“라다크에서 뭔가 해 보라는 거야. 너희에게도 라다크에게도 의미가 있을 만한 무언가 말이야.”

서울에 세 들어 사는 부모님의 집 말고, 온전히 내 것이었다고 여기는 공간이 있었다. 라다크 레 시내에 얼마 남지 않은 전통가옥 중 하나였다. 나무와 흙만을 이용하여 지은 그 집은 잘 살피지 않으면 좀처럼 찾기 힘든 곳에 꼭꼭 숨어있어서 카페를 찾는 손님들은 곧잘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카페에 들어선 사람들의 첫마디는 ‘여기 사람들이 찾아와요?’일 때가 많았다. 제대로 된 표지판도 하나 없이 장사를 하냐며 신경질을 내는 사람도 있었는데 오죽 헤맸으면 초면에 화부터 낼까 한편으로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카페는 3층에 있었다. 3층으로 연결되는 나무 계단은 너무 낡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밟으면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삐걱대는 소리가 났고, 계단을 모두 올라 카페로 들어서는 입구는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반드시 부딪칠 수밖에 없을 만큼 낮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전은 일상이었기 때문에 촛불을 켜놓기 일쑤였는데, 어둠 속에 ‘촛불’, ‘끼익 끼익’, 이런 요소들이 모두 만나 만들어내는 으스스한 분위기 덕분에 갑자기 들어온 손님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 서로 쏘리 쏘리,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다가 와하하 웃곤 했다.람도 있었는데 오죽 헤맸으면 초면에 화부터 낼까 한편으로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자부심을 가졌던 공간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화장실이었다. 라다크는 연 강수량이 극히 적은 건조한 땅이기 때문에 지면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화장실을 만들고 자연 건조 방식으로 처리한다. 완벽하게 건조되기 때문에 냄새는 나지 않지만, 물은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 과거에는 가족의 공용 공간으로 쓰였을 공간에 주방을 만들었다. 난로 배기관을 위해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낮에는 이 구멍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이 훌륭한 조명 역할을 했다. 그 빛줄기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를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이 땅에서 먼지는 일상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못을 박는 것은 물론이고 상하수도 시설조차 갖출 수 없었다. 이 집에 조금의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것이 집주인 아룬의 입장이었고, 우리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물을 길어다 쓰고, 생활하수는 따로 모아 직접 가져다 버려야 했다. 쌓여가는 설거짓거리를 보다 못한 단골손님들이 대신 수돗가에 나가 설거지를 해주는 일이 허다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그 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운명처럼 만나 깊이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은 집이 대부분 그러하듯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들고 나는, 그 박자와 흐름을 따라가면 더운 여름날에는 땀이 식었고,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는 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집에서 나고 자란 집주인 아룬처럼 우리도 그곳에서 세 번의 여름을 보내며 무럭무럭 자랐다. 멍하니 앉아 창밖을, 쨍하게 파란 하늘을, 보란 듯이 솟은 설산 스톡 깡그리를, 와장창 쏟아지는 햇볕을, 스르르 허공을 빗는 포플러 나무를, 흙색의 지구 표면을, 그 아름다운 장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니 너무 상투적이지만, 그때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주는 말도 없다. 

02_ 2022, 돌아온 여름

매 순간의 선택이 삶의 흐름을 바꾼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흐르는 동안은 알 수 없다. 달라진 물길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흐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문득 지금의 자리가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그제야 무엇이 지금을 만든 것일까 생각한다. 그리고 비로소 어떤 선택의 순간이 ‘운명’ 혹은 ‘인연’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카페, 라다크〉의 저자 젠젠과 춘자에게 그 시작은 ‘라다크’였던 모양이다. 2007년에 떠난 배낭여행 중에 우연히 흘러든 히말라야 고원의 사막 라다크에서 ‘운명’과 ‘인연’의 실마리를 발견한 그들은 라다크에서 만난 친구가 말한 대로 어떤 ‘의미’를 만들기 위해 그곳에 뿌리내린다. 라다크의 오래된 전통 가옥에 둥지를 틀고 여행자와 현지인 친구들의 아지트가 될 공간을 연다. 카페 두레의 탄생이었다.

젠젠과 춘자는 라다크에 살며 무럭무럭 자랐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은 집이 대부분 그러하듯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들고 나는, 그 박자와 흐름을 따라가면 더운 여름날에는 땀이 식었고,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는 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멍하니 앉아 창밖을, 쨍하게 파란 하늘을, 보란 듯이 솟은 설산을, 쏟아지는 햇볕을, 허공을 빗는 포플러 나무를, 흙색의 지구 표면을, 그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라다크에 살며 몇 번의 계절을 보내는 동안 차곡차곡 쌓은 소중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서, 오로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라다크에 대한 글을 쓰고 엮었다.

젠젠과 춘자는 자신들이 품은 행복의 원형이 라다크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품은 행복의 내용은 집을 짓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다. 소꿉놀이하듯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오늘 밤이 계속될 것처럼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다. 마음을 열고 기꺼이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다. 꿈과 꿈이 만나 더 큰 꿈으로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 혹은 그 꿈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젠젠과 춘자는 라다크를 선택한 순간 그들의 앞에 펼쳐진 눈부신 길 위에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카페 두레는 그들이 걷는 길 곳곳에서 계속되는 중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땅 라다크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펼쳐낸 그 단단하고 아름다운 행복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 〈카페, 라다크〉의 첫 장을 펼쳐 보시길. 히말라야 고원의 사막에서 부는 마른 바람이 당신을 그들 곁 어느 자리로 순식간에 데려다 놓을 테니.

“다이와 제이미가 라다크를 떠나던 날, 그들을 버스에 태워 보내며 우리는 눈이 퉁퉁 부어 뜰 수 없을 정도로 하염없이 울었다. 다이와 제이미가 없는 카페 두레는 한동안 쓸쓸했고, 우리는 잠깐 외로웠지만 그들의 자리는 다른 이들이 곧 채웠다. 친구에게 부탁해서 집에 있던 플루트를 전해 받았다. 십 년 넘게 손도 대지 않았는데 라다크에서 나는 매일매일 플루트를 불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기타를 쳤다. 날마다 굽는 카페 두레의 머핀은 누군가의 생일 파티 케이크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되기도 했다.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내가 라다크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며 끝까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름의 시작,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던 그때의 나에게 거짓말처럼 나타났던 그들 말이다.” 


 젠젠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먹어보고 싶은 여행자.
길 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재미나게 사는 게 인생 최고의 목표.

* blog.naver.com/zenzen25
* instragram _ @zenzen_cruise
* brunch _ @zenzen25e

c
 춘자 

현실이 되는 꿈, 결과를 낳는 가능성, 성공을 위한 도전, 함께 성장하기 위한 연대, 그리고 남이 아닌 진짜 내가 되는 일을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또 한다.

* steemit.com/@roundyround
* instragram @choonza_is_coming


 목차 

프롤로그 

언제까지 여행만 할 셈이야
우리집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
혹독한 라다크와 마주하기
No Mutton, No Party
거꾸로 가는 삶
장 보러 갑시다
건배, 치얼스, 촛
인연(춘자)
죽음을 연습하는 축제
새로 그린 지도
흐린 날의 판공초
비가 와도 괜찮아
오지 마을 탈출기
살구 열리는 계절
앗살람알라이쿰
마찬가지의 청춘
LBA에서 나왔습니다
사막의 트랜스 파티
재난
승려로서의 삶
라다크 사람들은 싸우지 않는다면서요?

에필로그 


저자_ 젠젠, 춘자
편집_ 춘자
디자인_ 우툰
발행일_ 2022년 08월 30일
사양_ 308 page | 130*200*18(mm)
ISBN_ 9791197115400(1197115404)
분야_ 여행 에세이
정가_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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